한국영화사랑 오발탄


정재연   pm.11:57, Monday ( 7016hit )
"가위"에 "찍히면 죽는다"

오랜만에 새로 나온 한국영화 비디오를 빌려다 봤습니다. 김규리, 유지태, 하지원, 정준 등의 호화(?) 캐스팅이 눈길을 끈 "가위"(Scissors가 아니라 Nightmare더군요... 영어 제목이. 김규리가 '가위에 눌리는' 장면이 한번 나오긴 합디다)와 "찍히면 죽는다" 두 편을 내리 봤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편이 다 공포물이더군요. 세상에 있는 영화를 드라마/코미디/액션/공포 딱 네 가지 분류로만 나누게 되는 경우에 그렇다는 얘기고 제 나름대로 다시 분류하자면 "가위"는 '얼렁뚱땅 지지고 볶다 용두사미로 끝나는 충무로표 영화', 그리고 "찍히면 죽는다"는 '잘 알려진 외국영화를 용감무쌍하게도 시종일관 베낀 영화' 정도로 딱지를 붙여 분류해 주고 싶습니다. "가위"은 "신혼여행" 옆에, "찍히면 죽는다"는 "홀리데이 인 서울" 옆에 꽂아 주면 되겠네요.



두 영화 중에서 어떤 쪽이 나았냐고 누가 제게 묻는다면 잠시 화난 표정을 지은 다음 한동안 우물쩍대다가 "찍히면 죽는다"가 나았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우선 제작비가 훨씬 적게 들었으니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단연 우세죠. 둘째로 작품의 창의성이나 개연성을 완전히 떠나 완성도(이런 거룩한 단어를 두 편의 영화에 갖다 대기가 좀 망설여 집니다만)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가위"의 시종일관 우왕좌왕 보다는 "찍히면 죽는다"의 꾸준함이 낫다는 생각이고요. 마지막으로 개선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이는 "가위"에 비해 "찍히면 죽는다"는 한가지 아쉬움이랄까, 작품에서 못 다 채운 상상력의 꿈틀거림이 좀 있었습니다.



"찍히면 죽는다" 혹시 보신 분 있으신가요? 처음 시작 부분, 즉 학교 뒷산으로 보였던 강원도 나들이 씨퀀쓰(빤쓰~할 때의 발음과 비슷하게) 직전까지 이 영화는 무척 신선했습니다. 청소년 영화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무지하게 도발적이더라구요. 특히 양호 선생님의 "학교 양호실에 빨간약 말고 다른거 있는거 봤어?"하는 장면. 그러나 그 이 후로는 "스크림"과 "나는 네가 지난 여름 한 일을 알고있다"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줄기차게 달려 나가는 바람에 제게 큰 실망을 안겨주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차라리 기존의 유명 공포물들을 신나게 패러디하는 요절복통 코미디로 만들었으면 얼매나 좋았을까 싶은게 제 한가지 아쉬움이라는 겁니다. 얼마전 "스캐어리 무비(Scary Movie)"가 나와서 '최근 공포물 패러디하기'를 이미 해버려 이 짓조차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세상에 공포영화들처럼 패러디하기 좋은 소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돈 좀 있으면 "플란다스의 개"를 찍었던 봉준호 감독을 불러다 '막가파형 순 한국영화 패러디' 영화 한편 만들어 보라고 밀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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